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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 세워 놓으셔” 마음에 민족애 생겨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왼쪽)가 정의여학교에 다닐 때 모습이다.현모양처(賢母良妻).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상당수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적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1910~20년대 조선땅의 일본인들은 사회의식이 강한 여성이 독립운동을 펼쳐 식민지 조선을 잃을 것에 대비해 계략을 펼쳤다. 여성교육의 목표를 현모양처로 정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오덴바(말괄량이를 뜻하는 일본 말)’라고 가르쳤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말괄량이가 아닌,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이 되고자 했다. 그런 까닭으로 김활란 고황경 김마리아 선생 등이 가졌던 애국심은 희미해져 갔다.
일본어와 일본 역사는 배웠지만, 한글과 한국 역사는 배우지 못했다.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일제의 포악성은 더 심해졌다. 창씨개명을 통해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쇠붙이는 모두 공출해갔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위문품 주머니인 위문대 만들기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체육 시간엔 목검(木劍)을 배웠다. 오후가 되면 근로봉사로 대동강 모래사장에 나가 땡볕 아래서 리어카에 모래를 실어 나르는 작업을 했고 일본군의 식량 확보를 위해 가을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1930년대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도 부엌일을 감당해야 했다. 나 역시 캄캄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지어야 했다. 아궁이에 솔가지를 놓고 신문지 같은 불쏘시개에 불을 붙였다. 성냥을 그어 불이 붙으면 신문지나 솔가지에 가만히 불을 대야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성냥불이 붙자 무서워서 아궁이에 휙 던져 버리곤 했다. 목재상에서 사온 톱밥은 뱅뱅 돌리는 풍구로 바람을 넣어야 불이 붙었다. 적당한 양을 부어 가며 풍구로 바람을 넣어 능숙하게 불을 붙이기까지 족히 1년이 넘게 걸렸다.
정의여자보통학교 시절 소풍으로 학교에서 멀지 않은 대성산 송태에 가게 됐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산에 올라가는 길에 돌더미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작은 돌을 쌓아 놓은 듯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선생님께 여쭸다.
“저 돌더미는 안창호 선생님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산책 나올 때마다 하나씩 세워 놓으신 거란다. 조선의 자주 독립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을 세워 놓으신 거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나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선의 독립이라니.’ 그동안 누구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대적 상황들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조선장로교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주기철 목사님이 출교됐다. 학교에선 선교사이자 교장인 헐버트 선생님이 앞장서 가시면 학생들은 모두 뒤따라 가 신사참배를 하곤 했다. 학교 내에선 일본 말만 해야 했고 일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들었다. 일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거나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한국말을 하다가도 입을 닫아야 했다.
‘도산 선생은 얼마나 조선 독립의 열망이 대단하셨기에 이처럼 크고 작은 돌을 하나하나 산책길에 세워 놓았을까. 그래! 나는 조선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백성이다. 나도 내 나라 독립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이다.’ 처음으로 신념이란 게 생겼다. 가슴에 ‘조선인 주선애’를 확실히 새기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다. 그 신념이 소녀 주선애의 마음에 뿌리내린 민족애였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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