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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30 21:47
임진왜란 때 있었던 노비출신 소드마스터
 글쓴이 : sdtlxbqy
조회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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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의 천민 한명련

(평소 하는 일 : 제가 똑똑히 봤시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개 의병으로 참전했는데

미친듯이 잘 싸웠던 덕분에 명성이 점점 퍼져서 임금님 귀 까지 소문이 들어감

당시 서인이었던 윤두수와 동인이었던 이원익이 각자 한명련의 무예를 칭찬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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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즈 시절의 시작

이후 한명련은 졸병의 신분에서 3품 관직인 별장으로 초고속 승진

이후에도 왜적을 상대로 인간백정이 무엇인지 제데로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전공인 공주-회덕 전투의 기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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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권율이 치계하기를,

“별장 한명련이 충청도 방어사(박명현)와 합세해서 왜적을 토벌하면서 공주ㆍ회덕 지경에 이르러 유숙하다가, 왜적이 진산으로부터 산길을 경유하여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2일에 잠자리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 변을 기다렸는데 왜적의 선봉이 갑자기 이르러 서로 교전하였습니다.

'얼마후에는 수많은 왜적들이 크게 쳐들어와 종일토록 힘껏 싸워 쏘아 죽인 것이 거의 2백여 명에 이르렀지만, 중과부적인 데다가 날도 어두워져 다만 6급만 베어가지고 왔기에 그 귀를 베어 올려 보냅니다.

'이날 싸움에서 앞을 다투어 돌진하고 좌우로 분격하여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는데, 창황한 나머지 전장에 버려두고 다 가져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힘껏 싸운 사람에 대해서는 권장하지 아니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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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육군 총사령관이 고작 칼잡이 한 명 때문에 부하와 다투는 사태가 발생?

그 칼잡이가 바로 한명련이었다.

권율 장군은 한명련을 자신의 직속으로 두고 특수부대로 써먹으려고 했지만

부하장수였던 김응서가 한명련을 빼돌려 자기 직속으로 삼아버리자 매우 빡쳐서 조정에 이를 비난하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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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왕이었던 선조는 한명련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총애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으로 한명련이 전투 중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일반 의사는 믿을 수 없으니 궁궐 내의에게 치료받게 한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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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같았던 사내 김덕령. 마치 싸펑이 생각난다)

 

당시 과장된 소문으로 명성이 높았던 의병장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조정에서 의심을 받았는데

선조가 김덕령의 무예를 두려워하자 신하들이 제시한 카드가 바로 한명련이기도 했다.

(애초에 김덕령과 함께 좌우별장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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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련의 능력을 알아본 것은 조선 뿐만이 아니였다.

명나라의 장수 마귀(이름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뛰어난 장수였다)

한명련의 무력을 인상 깊게 본 마귀는 선조에게

"조선의 뛰어난 장수로는 이순신, 권율, 정기룡, 한명련이 있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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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한명련의 처지는 오히려 불행해졌다.

선조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은 것이 문제였다.

당시 선조는 한명련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한명련에 종2품의 관직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도 종2품 관직이다)

그러나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한명련이 천한 신분이었던 것을 꼬투리 삼아 연일 상소를 해댔고

이를 견디지 못한 한명련은 자진해서 북방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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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밌게도 광해군은 왜란 당시의 한명련의 무예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본듯하다.

선조가 죽고 왕이된 광해군은 더 이상 견제할 필요가 없어진 한명련을 다시 기용했는데

직접 한명련을 언급하며 '역전의 장사'로 칭했다.

이후 한명련은 광해군의 심복이 되어 20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당시 명-후금 외교 군사문제에서 광해군의 비밀명령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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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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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하면서 한명련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낌새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즉위한 인조에게 사직을 요청했지만

인조는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고작 3개월 뒤 한명련을 역모 혐의로 체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후 잡혀오던 한명련을 이괄이 구출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낀 한명련은 결국 이괄의 난에 가담하여 이괄군의 선봉으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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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괄의 난은 결국 정충신에게 진압되는데

매우 아이러니한 점은 정충신 또한 노비 출신으로 임진왜란을 통해 출세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천민 출신 맹장 vs 천민 출신 지장의 대결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후 한명련은 패배한 이괄과 함께 도주하다 부하들의 배신으로 사망하고 만다.

한명련의 살아남은 아들 한윤은 복수심에 젖어 후금으로 투항

청나라의 장수가 되어 조선 침략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재밌는 기록으로는 훗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적진을 돌파할 인물이 없음을 한탄하자

신하 중 이경증이라는 자는 "한명련 같은 맹장이 있었다면 적진을 돌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며 팩트로 인조를 후려쳤다고 한다.